전재학 인천세원고등학교 교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널리 보편화되어 있다. 사람들은 화려한 성공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실패에 대한 관심이나 그로부터 배우는 것은 상대적으로 소홀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실패로부터의 상처를 회복하려는 탄력성의 문제이다. 실제 인간의 뇌는 부정적인 자극이나 슬픈 기억보다는 긍정적이고 기쁜 소식에 훨씬 원활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현대인은 실패보다는 성공에 더 목말라 하고 그로써 성공을 추구하려는 욕망은 삶의 구석구석에 퍼져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은 비극을 즐기며 거기서 삶의 위로와 동력을 얻었다. 당시에 화려한 문화와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그리스인들은 디오니소스 축제 중에 펼쳐지는 비극 공연에 광적으로 열광했다. 소포클레스로 대표되는 그리스 비극작가들의 작품은 디오니소스 공연장에 모인 그리스인들을 매혹시켰다. 찬란한 승리의 문화를 구가하던 그들이 슬픈 이야기에 그토록 몰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철학자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수많은 문헌분석을 통해서 그 비극이 오히려 위로를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타인이 겪은 ‘객관적인 비극’은 하나의 가상 경험이 되어 인간의 ‘주관적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타인의 행복보다는 자기와 비슷한 고통을 겪는 타인의 비극에 더 큰 위로를 받는다. 왜냐면 타인의 비극을 통해서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에 강력한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니체는 우리가 삶이라는 비극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타인의 고통을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비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단적인 예로 오늘날 우리가 비극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역사상 훨씬 앞서서도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그리스인들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에서 자신이 살인자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살인범의 수사를 몰아붙이는 오이디푸스 이야기에 자신들도 그런 무모함과 우직함이 있다는 사실을 공감하면서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극복할 힘을 얻기도 하였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최근에 와서도 드라마 《SKY 캐슬》처럼 현실을 풍자하는 비극적인 드라마에 몰입하는 것도 사필귀정,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우리가 경험하기 때문이다.

요즘의 교사들은 각종 수업대회를 통해서 좋은 수업, 성공한 수업으로 연출된 것에 대해서 더 이상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단지 소수만의 특별한 문화로 간주한다. 그래서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교사는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수업이 주는 긴장과 고통을 견뎌야 한다. 그래서 좋은 수업을 칭찬하는 것보다는 수업 실패담이 교사들 간에 공감과 위로를 전달하는 효과가 크다. 학교 단위마다 교사들 간에 전문적학습공동체를 통해서 수업에 관한 실패담을 공유하고 회복탄력성을 키워 더욱 멋진 수업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고자 모색하는 활동이 활성화되어 있다. ‘배움 중심 수업’도 그 뿌리가 원래는 수업의 경험을 나누며 학생들이 갈망하는 수업, 학생 편에서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을 지향하려는 것이 아닌가?

이제 교사문화는 ‘수업 우수 사례’보다는 ‘수업 실패 사례’를 나누는 일종의 비극을 공유해야한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이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서 밝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실천이기도 하다. 따라서 본능에 충실한 자연스런 교사문화의 동력이 될 수 있다. 현재 교사들에게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온라인 수업의 진행을 넘어 이제는 실시간 쌍방향 수업에 대한 압력이 교육당국, 학부모로부터 본격화되고 있다. 이처럼 밀어붙이기식, 여론으로 강제하는 방식은 부정적인 반응만 키운다. 교사의 자존감을 높여주며 교육환경개선 등을 통한 지속적인 시도가 있어야 한다. 지금 학교 현장은 생소한 환경에서의 실패한 수업으로부터 회복탄력성을 을 키우는 위로와 격려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