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논어』 옹야(雍也)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낙지자).” 이는 호학(好學)의 성인인 공자의 가르침으로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또 『장자』 양생주(養生主)편에는 “吾生也有涯, 而知也無涯(오생야유애, 이지야무애)”는 말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무위(無爲)의 철학자 장자가 ‘우리 삶에는 끝이 있으나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한 말이다. 이 두 말속에는 배움(知)을 공통어로 간직하고 있다. 전자에서는 즐겁게 배움에 도달하는 자세가 후자에서는 유한한 인간의 삶에서 끝이 없는 배움의 입지가 드러난다. 결국 배움은 좋아(好)하고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평생학습’으로 이어져야 함을 역설한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학생으로 살아가고 죽어서도 ‘현고학생부군(顯考學生府君) 신위(神位)’의 지방(紙榜)처럼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운명이다.

그렇다면 평생학습의 기반이 되는 우리나라 학교교육은 무엇이 문제일까? 안타깝게도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은 시험을 보고나면 바로 모두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힘들게 공부하여 습득한 지식이 왜 한 순간 이후에 모두 제로상태가 되는 것일까? 모든 것이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시험공부요, 경쟁에서 앞서기 위한 생존의 수단으로 억압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주입식 공부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라도 더 외워 지식을 축적하고 이를 수학능력의 척도로 간주하는 교육제도 탓이다. 이는 점수를 높이기 위한 암기 위주의 학원식 공부(cram school)와 하등의 차이가 없다. 그러니 학생들이 공부의 진정한 즐거움을 알 리가 없다. 이를 반영하듯 일찍이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학생들은 미래에 필요치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하루 10시간 이상을 허비하고 있다”라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그럼 어떻게 공부해야 평생 즐겁게 공부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공부의 프로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의 아마추어를 키우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우리 교육은 수능의 달인, 즉 문제 풀이의 프로들은 너무 많이 만들지만 정작 공부를 좋아하고 즐기는 아마추어들은 키우지 못한다. 아마추어(amateur)가 무엇인가? 원래 이 단어의 최선의 뜻은 사랑하는 자, 즉 애호가(愛好家)라는 뜻이다. 등산이나 낚시, 바둑이나 조기축구, 독서나 글쓰기, 영화나 음악 감상, 요리나 꽃꽂이 등등 무엇이든 좋아하는 자는 말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더 좋은, 더 힘든 배움의 과정을 기꺼이 참여하고 즐긴다. 소위 ‘사서 고생한다’는 말의 증거자다. 따라서 생존을 위한 살벌한 경쟁이 아니라 끼리끼리 즐기고 더불어 사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움인가.

이제 우리 교육은 기본을 재정립해야 한다. 공부를 잘하게 하기 전에 공부를 좋아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지금은 ‘평생교육’의 시대임을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 실제로 하루가 멀다 쏟아져 나오는 지식의 양을 한 순간에 따라잡기란 불가능하다. 낡은 지식의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는 옛날식 학습으로는 날로 새로워지는 지식을 따라갈 수 없다. 또한 우리 교육이 추구하는 창의력과 문제해결능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할 수도 없다. 공부가 힘들어도 즐거울 수는 있다. 힘이 들수록 더 즐거울 수 있는 것이 공부다. 단 그것이 공부의 아마추어라야 가능하다. 공부를 힘겨운 노동이고 원수처럼 여기는 것으로는 학문을 성취할 수 없다. 컴퓨터 게임을 즐기듯이 수준을 단계별로 업그레이드하며 공부하는 아마추어를 육성하는 것이야말로 학교교육이 지향할 길이다. 공부의 아마추어, 공부를 사랑하는 애호가라면 공부할 게 많다는 건 얼마나 축복인가. 인생 백세 시대에 고작 청춘의 나이, 이삼십 대 안에 공부를 끝내는 것은 지극한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