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인천 제물포고 교감)

만약 수술하는 의사를 환자가 믿지 못한다면 어찌될까? 이는 신뢰가 무너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한국사회에 공적 신뢰가 떨어지다 보니 이렇게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 일상사가 되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는 다양한 미디어들을 통해서 좋든 싫든 간에 자체적인 포퓰리즘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예컨대 팟케스트라는 프로그램이 유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 사회의 불신과 모순의 총체적 상징이 교육시스템이다. 국가 교육시스템을 국민들이 너무 불신하다 보니까 종기가 나서 물러 터지고 썩어 문드러지는 상황이 되어도 차라리 이 제도를 그냥 두라고 한다. 뭔가 개선하려는 의지조차 발휘하기 어렵게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사회의 일보 전진을 위해서는 이 교육시스템의 전환이야말로 최후의 핵심이라는 것을 이제 우리 국민은 알고 있다. 하지만 교육제도의 내부모순이 심해서 온갖 이해관계가 상충하여 강력한 사회저항부터 발생하는 것이 우리의 실상이다.

두 말할 나위 없이 교육시스템은 사회적 신뢰가 결정적이다. 두 나라의 경우를 비교해 보자. 핀란드는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높다. 여기엔 핀란드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그들의 시스템을 크게 신뢰하기 때문에 서로 벤치마킹 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핀란드의 부모들은 자기 아이의 교육을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교육시스템에 자신감이 있으니 부모들은 아이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 교육에서 본질적으로 정말 중요한 것, 해야 할 것을 바로 이런 시스템을 학교라는 공교육에서 실험할 수가 있다. 개개인이 공적 시스템에서 아주 만족을 하면서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 바로 핀란드에서 일어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어떤가? 사회적 신뢰가 바닥이고 특히 교육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엄청난 상황이다. 여기선 교육을 행복 추구의 관점으로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피땀 흘려서 노동하듯이 입시 공부를 해서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21세기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고통스러운 노동으로 생각하고 게다가 학교에서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방식의 노동을 시킨다. 이 인공지능의 시대에 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고통스러운 노동으로 공부해서 대학에 가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고 원하고 잘하는 것을 발견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왜냐면 그런 교육을 통해서만 자기가 갖고 있는 개인적인 특징, 특기를 마음껏 발휘함으로써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교육에 대한 신뢰를 통해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성장을 해서 사회에 나가야만 아이들이 그 경험을 통해 사회를 원칙이 있는 사회, 사회적 신뢰가 있는 사회로 만들 수 있다. 사회에서 협력적 사고로 일을 잘 하려면 우선 학교에서 그런 협력적 사고에 의한 교육적 경험이 있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학교에서 협동 정신을 못 배우고, 남을 짓밟고 올라가 자기만 일등하면 끝이고, 대화를 통해서 타인을 설득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친구를 대하는 훈련을 해본 경험이나 공감 능력이 없는데 어떻게 어른이 되어서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둔 채 사회적 신뢰를 말한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회적 신뢰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 가치에 맞는 제도를 디자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치에 맞는 교육이 학교교육 과정에서 디자인되어 훈련이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사회적 신뢰가 바닥인 우리나라에서 아무 노력도 없이, 아무 비전도 없이 당장 무언가를 하려고만 해선 안 된다. 그러니 우리 교육이 마냥 찔끔찔끔 겉모양만 바뀌어 요 모양 요 꼴이지 않은가? 장기적 안목을 갖고 신뢰의 씨를 뿌리고 교육을 통해서 신뢰의 싹을 띄우며 키워나가는 노력은 요원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