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9월 6일 ‘2020 서울학생 기초학력 보장 방안’을 발표하였다. 초등학교 2학년 집중학년제, 초3과 중1 모든 학생의 기초학력을 진단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진단과 학습지원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발표된 방안은 학습적인 측면에만 집중되던 기존의 기초학력 정책과는 달리 건강·환경·정서 요인 등 다양한 측면의 지원방안을 모색한 점, 난독과 경계성 지능 등 복합적 특수요인을 가진 학생들을 찾아내어 지원하는 방안을 수립한 점, 교실과 학교, 학교 밖 지원 등 단계적 학습안전망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정책이라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학습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에 대한 지원방안이 뚜렷하지 않아서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적인 성과를 거둘지 지켜볼 일이다. 이에 기초학력 정책의 성과를 바라는 마음에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선 제대로 된 진단과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이번 기초학력 보장 방안에서 초3과 중1 모든 학생의 기초학력을 진단하겠다는 발표에 일부 교육단체에서 일제고사의 부활이라며 강력 반발하기도 하였다.

과거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때문에 학교 간 줄 세우기 경쟁과 같은 부작용을 경험한 바 있어서 이와 같은 반발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방안에서는 진단의 시기와 방법을 단위학교가 선택하도록 하고, 심지어 단위학교의 자체적인 진단도구도 허용한다고 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방식의 일제고사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읽거나 기초적인 셈하기를 익히지 못해 이후 여러 학습에서 누적된 실패를 경험하지 않도록 지원 대상 학생을 정확히 찾아내는 것이 보다 중요한 일이다. 교육당국은 보다 신뢰도 높은 진단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학교에서 상시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지원 프로그램이다. 학습지원이 필요한 학생을 찾아냈다 할지라도 기존의 보정프로그램은 학생이 과거에 실패한 학습법을 다시 반복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기초학력이 부족한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학교 현장에서 기초학력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도 우리나라에 효과가 검증된 체계적인 보정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이다. 읽기가 안 되는 학생이 소리값을 알지 못하는지, 유창성이 떨어지는지, 문해력이 낮은지 그 원인을 정확히 찾아내서 그에 맞는 학습법을 연결시켜 주어야 하는데 아직 전국 학교에 이런 프로그램이 보급되고 있지 못하다.

최근 강원도, 대전, 제주 등을 중심으로 한글 문해 전문가 과정과 같은 연수들이 열려서 주목을 받고 있으나, 전국의 초등교실에까지 확대되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셈하기 학습에 대한 체계적인 진단법과 학습법도 연구되어야 한다. 기초적인 셈하기를 어려워 하는 학생들이 왜 어려움을 갖는지에 대한 정확한 분석 도구가 없으니, 적절한 학습법도 찾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진단도구·중재도구와 같은 프로그램 등을 조속히 개발하여 학교 현장에 보급해 주어야 한다.

기초학력 정책에 대해 ‘전문성 있는 교사가, 효과가 검증된 프로그램을 가지고 지속적이고(6개월 이상) 강도 높게(주2~3회)’ 이루어져야 그 성과를 볼 수 있다고 여러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효과가 검증된 프로그램이 있다 해도 교사들의 전문성이 낮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전문적인 연수를 통해 교사의 전반적인 기초학력 전문성을 높이고, 특별 연수를 통해 다른 교사들의 학습 지원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높은 전문성을 가진 교사를 1~2명씩 학교에 배치해서 다중지원팀을 이끌게 되면, 다른 일반교사를 지원하거나 보다 전문성 있는 학습지원을 직접 하면서 학생들의 학습안전망을 갖출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실-학교-외부 전문가로 이어지는 3단계 학습안전망을 통해 책임 있는 학습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교육청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검증된 진단과 지원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교사들의 전문성을 높이며, 가장 전문성 높은 교사가 가장 어려운 학생을 지원하는 원칙을 세워 정책으로 실현시키는 일이다.

기초학력에 대한 학부모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진단 검사를 통해 학습지원이 필요한 학생이라는 판단이 생겨도 자녀가 상처입거나 낙인찍힐까 두려워서 학부모가 학습 지원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고, 이것이 학교에서 기초학력 문제를 접근하는 가장 큰 어려움이기도 하다.

학습에 어려움을 가진 학생이 있다면 학생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보다, 다른 속도와 다른 방법으로 배우는 학생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아이가 가진 특성을 잘 분석해서 그에 맞는 학습지원을 조기에 해 주는 것이 그 아이를 가장 잘 돕는 길이다.

기초학력 책임교육의 대상이 되는 학생들을 다른 속도와 방법으로 배울 수 있다고 하는 철학을 학교와 학부모가 공유하고 협력할 때 지원의 효과는 더욱 커진다. 학교와 가정의 신뢰와 협력 속에서 제대로 된 지원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학생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서울시 교육청의 비전이 꼭 이루어지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