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수능을 코앞에 둔 여고생들이 교실 뒤편으로 모여든 것은 지난 5월부터. 수험생활을 하는 고3 교실 분위기가 한층 밝아지고 생기가 돈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일은 한 여고생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식목일을 맞은 여고생이 지나치지 않고 감수성을 발휘해 “교실에서 채소를 가꿔보자”고 이색 제안을 한 것. 이과반 학생들의 식물관찰용이 아닌 순수하게 채소를 가꿔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여고생들의 ‘식물 기르기’는 이제 교내 생동감을 주는 객체가 되고 있다.

인천 인일여자고등학교(교장 김은숙, 사진) 3학년 9반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것이 창틀에 줄지은 방울토마토. 교실 뒤쪽 사물함 위에는 상추가 심어 있다. 상추 화분에는 식목일 날짜와 ‘얼렁뚱땅뽕’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여고생의 톡톡 튀는 감수성이 한 눈에 들어온다. ‘30938~30942’ 학번이 붙은 화분이 교실 한켠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여고생의 이색 아이디어 덕분이었다.

인일여고 박진희 학생(3학년)은 지난 5월 식목일을 맞아 친구들에게 “돈을 걷어서 딸리와 방울토마토, 상추를 사서 길러보자”고 제안했고, 학생들은 모두 모여 하루에 한 번씩 물을 주면서 채소 기르기에 나섰다.

9반이 채소를 기른다면 8반은 관상식물이 즐비하다. 사물함 위에 행운목을 나란히 놓고 학급 전체가 화초를 돌보고 있었다.

인일여고 박도연 학생은 “2학년 때부터 키워온 행운목을 버리고 싶지 않아 3학년 교실에서도 기르기 시작했다”며 “친구들 모두가 행운목 기르기에 동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식물을 기르는 여고생들의 바람은 소박하다. 채소를 기르는 9반은 수능이 끝난 후 학생이 모두 모여 삼겹살 파티를 하며 수다를 떠는 것이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식물 기르기’가 입소문 나면서 학교측은 팔을 걷어부쳤다. 교실에서 식물을 기른다는 발상을 놀라워하기보다 칭찬해주고 격려해줬다. 입시에 매몰된 학생들의 정서가 유연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일여고 이미영 교감은 “학업 스트레스로 많은 학생들이 힘들어 하는 와중에 우리 학생들이 건강하고 밝은 심성을 보여줘 매우 뿌듯하고 기쁘다”며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학교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