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딱딱한 교과서 대신
스토리북 단어 외우니
시험 60점→80점대로 상승
영어선도학교에 도입도
“일진을 한다고? 남아!”
서울송곡여자고등학교(교장 왕춘정) 이경찬 교사가 쉬운 영어를 표방하게 된 건 나머지 공부와의 인연이었다.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면 상급 선배들이 학기 초에 봐뒀던 1학년 학생들을 불러 화려한 신고식을 치룬 뒤 일진에 가입시키는 것은 으레 있는 일. 2004년 당시 송곡여중에서 1학년을 맡았던 이 교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 학생 3명을 방과 후 남겨놓고 나머지 공부를 시켰다. 하지만 학생들은 영어를 몰랐다. 문장을 읽지 못했고 해석하라면 입을 다물었다. 깨끗한 영어교과서가 얼마나 학생들이 영어를 피하는지 말해줬다.
이 교사는 교과서 대신 스토리북을 펼쳤다. 미국인 유치원생 어휘 수준에 달하는 스토리북은 600개 한정된 단어가 반복됐고, 문체와 문장 구조 또한 비슷했다. 학생들은 곧잘 따라왔다. 단어를 외우게 하고 해석을 쓰게 했다. 외운 단어를 퍼즐로 문제 내니 3명이 서로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학기가 끝나가던 기말고사에서 학생들을 영어 성적을 올렸다. 그 중 한 명은 80점대 후반의 점수를 이 교사에게 선물했다.
요약하고 퍼즐 맞추는 ‘쉬운 영어’
송곡여고로 자리를 옮긴 이 교사는 지난 2009년 영어선도학교 사업을 맡으면서 나머지 공부 시간에 적용했던 스토리북 효과를 재연해보기로 했다. 일주일 중 4시간이었던 영어를 교과서 수업 3시간, 스토리북 수업 1시간으로 나눴다. 학생들이 스토리북 1단원씩 읽고 육하원칙에 따라 요약하면 원어민 교사가 쓰기를 검수했다.
수업시간은 발표로 채웠다. 조를 나눠 학생들이 읽은 내용을 가지고 사전에 그림을 그리고, 한 명씩 돌아가며 원어민 교사에게 자신의 그림을 설명했다. 원어민 교사가 전자칠판에 그림을 그려 학생들이 그린 것과 대조해 비슷한 부분이 많을수록 점수를 가져갔다.
스토리북 ‘오페라의 유령’은 영화까지 수업 자료로 됐다. 듣기 연습을 위해 관련 장면 영화를 틀어주면 학생들은 들린 어휘를 맞췄다. 별도의 스크립터 없이 바로바로 발표하면서 듣기 연습을 이어갔다.
스토리북을 통한 영어 다독은 이 교사가 수업에서 적용하면서 체계를 잡아갔다. 창의적 재량활동이 중요시되면서 스토리북 재미를 안 학생들은 도서관에 진열된 스토리북을 대출해 독후감을 썼다. 이 교사의 스토리북 다독 효과의 결과물이었다.
이 교사는 “영어교과서에서 잃은 흥미를 스토리북으로 채우고 학생들이 이끌어가는 수업을 만든 ‘쉬운 영어’ 효과가 나타났다”며 “교과서와 부교재 조화를 고려하는 안목이 교사에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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