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공화국의 또 다른 얼굴
서울 2호선 신도림역 부근에 위치한 한 검정고시 학원. 10월 한 달동안 오전과 오후에 1번씩 주부들을 대상으로 ‘브랜드 특강’이 진행됐다. 특강료는 한 달 11만 원, 수강생은 한 반에 20명 내외다. 연령대는 대부분 50대 여성이지만 더러 40~60대 여성들도 있다. 수업 내용은 일반 강좌와 좀 다르다. 일명 생활밀착형 영어로 상표를 배운다. DUNKIN, VIPS, Coffee Bean, NIKE, MCM 등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브랜드들이다. 검정고시 학원이 주부대상 영어수업에 브랜드 특강을 마련한 건 주부들의 요구 때문이었다.
H검정고시 학원 관계자는 “브랜드 특강은 길에서 음식점을 찾을 수 없고, 백화점에서 상표를 읽을 수 없는 성인들을 위한 강의”라며 “수강생들의 요구가 계속 있어왔다”고 말했다.
서울 상계동 주택가에 위치한 마들여성학교에서도 기초영어시간에 영어상표 수업을 병행한다. 수강료는 매월 3만 원. 1990년부터 문해교육을 시작한 마들여성학교는 현재 기초영어반만 5개를 꾸리고 있다. 수강생은 인근 아파트와 주택에 사는 30대 젊은 새댁부터 60대 어머니들이다.
“TV 광고에서 삼성이 나와도 소리로 알지 읽지를 못하는 거예요.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있어 나갔다가 못 찾고 ‘커피빈’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대요. 바로 앞에 있는 카페를 두고 찾으니까요. 이분들은 백화점만 가면 눈 뜬 장님이 돼요. 백화점 브랜드는 대개 영어잖아요.”
마들여성학교 김인숙 교장은 수강생들의 하소연을 대신 전해줬다. 간판마다 영어 상표가 즐비한 건 최근에 생긴 일이 아닌데 그동안 영어를 모르고 어떻게 살았을까.
“그동안은 대부분 참고 사셨던 거 같아요. 그런데 영어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생활까지 파고드니까 위기감을 느낀 거죠. 대화 하다가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점점 영어 상표가 늘어나는데다 나라에서 하도 영어를 중시하니까 안 되겠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영어비문해자 중에서 그나마 사정이 나은 경우는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를 모르는 경우다. ‘시너지 효과’가 바로 대표적이다.
“시너지라는 정확한 뜻은 모르는데 대충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이 그런 말을 하면 수긍을 하는 척 하는 거예요.”
교과부, 파악된 영어비문해율 없고
15세 이상 비문해자 약 600만 명
이중 대부분 영어 모를 거라 추청만
지난 2005년 통계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국민 중 중학학력에 미치지 못하는 중졸 미만의 인구는 약 599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15.7%로 추정된다. 국립국어원은 19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국민 기초문해력을 조사한 결과 전체국민 중 약 260만 명(전체인구 7%)이 낮은 수준의 문해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과부가 파악한 영어비문해율은 없다. 다만 추정할 뿐이다. 약 300만 명의 성인 국어비문해자가 대부분 영어도 모를 것이라고 내다보는 식이다. 이들의 연령이 50대라는 점에서 영어비문해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김 교장의 생각은 다르다. 영어비문해자를 대상으로 처음 기초영어교실을 운영했던 5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수강생은 3배로 늘었다.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면 영어비문해자가 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늘고 있다. 왜 그럴까. 김 교장은 통계청 자료를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영어를 못하는 건 학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대부분 어머니들이 초등학교 졸업이어도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하는 것처럼 통계 뒤에 숨은 수요가 어마어마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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