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4개 고등학교 2학년 37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노동자 하면 주로 어떤 이미지냐는 질문에 ‘나는 되고 싶지 않다’(39.4%)는 답변이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어 가난하다(34.7%), 불쌍하다(33.6%), 미래의 나의 모습이다(5%), 자랑스럽다(3.2%)가 뒤를 이었다. 당시 설문조사를 진행했던 청소년 노동인권 네트워크는 노동자를 인식하는 학생들의 답변이 한국사회 노동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 기피하는 사회
노동을 총괄하는 고용노동부가 내놓는 보도자료와 정책에서 ‘노동’이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노동자보다 근로자, 노동조건 개선보다 근로조건 개선이라는 표현이 더 자주 사용된다.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 김성진 위원장은 노동은 우리사회가 기피하는 단어라고 꼬집었다.
우리사회가 기피한 노동은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노동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학생들은 노동자를 가난하고 불쌍하고 처량하게 보면서 노동자는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반면 노동의 가치를 알고 땀 흘리는 대가를 자랑스러워하는 노동자가 자신의 미래 모습이라고 말하는 학생은 극히 드물다. 왜 학생들은 노동자를 오해하게 됐을까?
◇알맹이 빠진 청소년 알바
청소년들의 노동은 알바로 집약된다.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서울 동부지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 이상인 51.6%(321명)가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법 등 노동법에 대해서는 78.7%가 모른다고 답했고,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은 1.6%에 불과했다. 대부분이 참고 넘어가거나 혼자서 해결하는 식이었다. 일각에서는 알맹이 빠진 청소년 노동이란 말이 나왔다.
알바를 하는 청소년들에게 노동교육이 절실하지만 교육되지 못하는 것은 레드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의 노동은 역사적 사실과 흐름을 같이 한다. 군사정권 시절부터 내려온 반공은 노동을 이데올로기로 몰아갔고, 색깔론을 뒤집어 씌웠다. 여전히 우리사회가 몸살을 앓는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가 노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시대가 변해 청소년들의 절반 이상이 노동을 경험하고 있지만 교사들의 관심과 대처는 한참 늦다. 교사 스스로가 노동자 의식이 약해 노동법에 관심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일각에서는 문제의식을 갖은 교사들이 학교에서 노동교육을 꺼냈다가 오히려 탄압을 받는다는 항변도 이어진다.
◇노동 빠진 사회교과서
노동에 대한 교육현장의 외면은 교육 부재로 이어졌다. 한국노동교육원이 지난 2003년 초중고교 사회교과서 노동교육 내용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교육은 일, 노동의 개념, 직업윤리, 직업선택, 노동과 여가, 경제활동, 현대사회 노동문제(여성근로자, 외국인 근로자, 실어), 정보화, 세계화에 따른 변화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노동법이나 노사관계, 노동조합에 관한 내용은 아예 빠지거나 잠깐 언급하는 정도에 그쳤다.
특히 노동3권,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등 노동 관련법 내용을 다룬 교과서는 ‘대한교과서’에서 출판하는 단 1종류에 불과하고 나머지 교과서는 이에 대해 전혀 다루지 않고 있다.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 이성주 위원장은 노동교육이 학교에서 온전한 노동으로 교육되기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의 실행을 주문했다.
이 위원장은 “정부와 학계, 노동단체, 시민단체가 모여서 노동을 어떻게 풀 것인지 범정부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노동을 어떻게 교과서에 담을 것이냐 논란은 계속된다. 노동교육을 강화하는 목적으로 노동자로서 올바른 가치관 형성이나 피해 구제에 중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과 사회 이익과 배치되는 노동은 잘못이라는 입장에서 노사관 정립을 세워야 한다는 논리가 여전히 대립한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우리나라의 경우 시장경제와 직업윤리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며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노동인권에 대해 역할놀이를 활용하는 등 체계적”이라며 일관성 있는 교육을 주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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