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재개발지역(전농동 일대)에 위치한 답십리초등학교 모습.
철거 방치된 동대문구 재개발지역에 가다
비바람이 불던 지난 15일. 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5동 재개발지역(전농동 일대)으로 본지 기자가 정성영 동대문구 의원(한나라당)의 안내를 받아 발걸음을 했다. 재개발지역은 가파른 언덕을 시작으로 뻗기 시작해 좁은 골목을 끝으로 내리막 경사를 이뤘다.
철거가 중단된 골목 곳곳에서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묻어 나왔다. 깨진 집 창문 사이로 내부가 훤히 보였고, 누군가 버리고 간 쓰레기와 세간 살림살이가 안을 가득 채웠다. 그나마 열에 한 꼴로 체취가 느껴지는 집을 보면서 사람 사는 동네가 맞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때 2400여 가구가 동네를 이루던 곳은 현재 흉측한 주택가로 변모해 120여 가구만 그곳을 지키고 있다. 간혹 가다 보이는 집들은 문이란 문은 다 닫고 있었다. 외부와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서인지 대문과 창문 단속을 철저히 하는 듯 했다. 사람이 거주하는 집 주변에는 그 흔한 화분, 장독대, 우편물도 보이지 않았다.
오후가 되자 재개발지역 진입로 옆에 위치한 답십리초등학교 교사들이 직접 학생들의 하굣길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중앙현관에서 학부모 3~4명이 자녀를 마중 나와 있었다. 6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는 며칠 전 발걸음을 한 재개발지역 이야기를 들려줬다. “거기는 낮에도 무섭더라고요. 가로등도 얼마 없고, 거기에서 사는 주민들은 어떻게 살까 싶어요”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주민도 한마디 보탰다. “아직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거예요. 밖에다 빨래고 화분이도 장독이고 두지 못한대요. 남아나는 게 없으니까. 그건 밤사이 누가 와서 가져간다는 얘기겠죠.”
또 다른 이는 학교 바로 옆에서 철거가 중단된 채 방치돼서 아이들 교육환경이 걱정이라고 염려했다. “조합원에서 소송을 걸어서 지금껏 중단된 상태예요. 철거를 시작했으면 빨리 끝내서 최소한 피해가 없게 해야 하는데 마냥 저렇게 방치하면 뒷감당을 누가 해요. 힘없고 애꿎은 사람들만 당하는 거지”
학교선 외부인 차단이 최선책
답십리초등학교 박덕진 교장은 가정통신문 2통을 보여줬다. 등하교 지도와 후문 통재 제한 건이었다. 간혹 학교에 일찍 오는 학생들이 있어 등교 시간을 조정했다. 학부모들에게 오전 8시 20분에서 40분 사이 정해진 시간에 맞춰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후문 출입도 제한했다. 학생들 등하교 시간에 맞춰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오후 12시부터 3시까지만 개방하기로 했다. 박 교장은 그동안 답십리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학교 앞 도로공사 때문에 노심초사한 심정을 늘어놨다.
박 교장은 “등하교 하는 학생들 안전보호에 가장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요. 학교에 있으면 교사들이 수시로 도니까 괜찮은데 밖에 나가면 도리가 없지요”
다행히 지금은 기간 내 학교 앞 도로 공사와 담장공사가 끝나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박 교장이 마음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학교와 관련 없는 외부인의 빈번한 무단출입이다. 학교 현관을 관통해 정문과 후문을 오가는 길목을 막아야겠다고 판단한 건 학생들의 안전 때문이었다.
철거가 끝나고 시작되는 공사를 생각해 미리 공사를 주관하는 회사와 구청에 언질을 해뒀다. 공사 시 주차문제를 확실히 하고 인부를 비롯한 외부인 출입을 막기 위해서다.
ⓒ 학교 바로 옆 골목 주택가는 철거가 중단된 채 방치되어 있어 학생보호 대책이 요구된다.
밤사이 학생 흡연에 노숙자 불 사용 “화재 위험 커”
정 구의원은 재개발지역을 익숙하게 돌았다. 정 의원은 하루에도 이곳을 여러 번 떠올린다고 했다.
오후쯤이면 재개발지역은 인근 학교 학생들의 흡연장소로, 밤사이에는 노숙자들의 칩거 장소로 이용된다. 철거가 중단된 재개발지역은 책임질 사람도, 주인도 없는 곳으로 변모해 우범지대로 전락했다.
정 구의원은 “이제 날씨가 더워지면 쓰레기로 악취가 심해질 거예요. 여기에 도둑고양이가 얼마나 많은지. 살이 제대로 쪄서. 아휴, 노숙자들이나 학생들이 와서 불 사용하면 화재 위험이 제일 큽니다. 불이라도 나면 그나마 살고 있는 사람들은…”
ⓒ 철거가 중단된 골목 진입로 모습. 2,400여 가구가 살던 동네는 현재 120여 가구만 남았다.
떠나지 못한 거주자 학생 보호는 누가…
골목은 일반 통로와 다른 구조를 띈다. 단순히 좁아서가 아니다. 대개 골목은 길과 계단의 불규칙성과 낮은 담장을 특징으로 한다. 동선의 효율성이나 공간 활용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만들어진 길과 계단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골목의 집은 담이 낮다.
하지만 답십리 재개발 골목은 빌라와 연립주택이 낮은 담벼락 사이로 치솟아 있다. 불규칙한 공간 사이로 또 다른 집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안과 밖의 기준 없다. 길과 담이 엉켜 있다 보니 꺾이는 골목은 소리를 중간에서 차단한다.
정 구의원은 “골목에서는 20m만 떨어져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어요. 아무리 순찰을 돌아도 한계가 있어요. 게다가 순찰차로 돌면 건물 안에 들어앉아 있으면 몰라요. 여기서 살고 있는 주민들 중에는 학생들도 있을 겁니다. 골목에 CCTV는 고사하고 가로등도 고만고만한데 그 사람들 보호를 누가 해줄 수 있겠어요?”
뉴타운이 학생들에게 남긴 것
뉴타운은 양날의 칼을 가졌다. 주민들은 재개발지역에서 뉴타운으로 거듭나려면 감수해야 할 것이 많다고 했다. 이번 부산 여중생 사건은 재개발의 이면을 보여준 거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이익과 손해가 엇갈리는 개발로 인해 우범지대에 노출된 학생들. 재개발지역에 속한 학교들이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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