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바람이 모질다. 교사들은 책갈피 대신에 잔잔하게 물든 낙엽을 책에 끼우고자 했으나 혹한기는 일찍 왔다. 가을 내음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춥다고 아우성쳤다. 다가오는 추위에 방학도 서둘렀다. 신난 아이들은 집에서 몸을 돌돌 말았다. 이번 가을도 ‘독서의 계절’ 이란 말이 무색해졌다. 교사들은 학생들과 학교 운동장에 뿌리 내린 은행나무, 단풍나무 잎을 주워 시집에 고이 간직하고 팠다. 이번 학기에는 색다르게 해보리라, 마음먹은 교사들은 금세 찾아온 겨울방학 앞에서 그동안 해오던 추천독서 목록을 다시 골랐다. 서가엔 이제나 저제나 변함없이 잠든 책이 수북하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좋고 재밌고 신나는 책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을까? 책과 교육 사이에서 고민하는 교사들. 이들의 고민을 머리에 이고 독서교육 진단과 대안을 담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단기간 급성장한 독서문화
지난 10년간 활발하게 진행된 도서관 사업으로 ‘학교 도서관’은 일정 수준의 선진화를 이루었다. 교육부가 매해 억 소리 나는 예산을 집행해 학교 도서관 부흥에 불을 지핀 덕이다. 언론과 지자체도 학교와 손을 잡고 독서문화 진흥에 나섰다.
반면 도서관 내실화는 부진했다. 단기간에 우후죽순 생긴 도서관은 외양을 갖추느라 급급했고, 결국 독서교육은 궤도에 안착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몇 번의 독서교육 방법이 학교 현장에서 출현했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아무거나 읽는 아침독서운동…저자와의 생생한 독서인터뷰
대다수 학교들은 독서 중요성에 큰 공감을 보이면서도 시간 활용에는 인색하다. 특히 중고교는 정규수업시간에 짬 내서 책 읽기 쉽지 않다. 그래서 나온 것이 아침독서운동. 아침마다 10분씩 책 읽자는 이 운동은 학생들이 읽고 싶은 책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간단하고 명료하다. 교사들은 사후활동이 없어 마음이 가볍다. 대신 아무 책이나 읽으면서 지루해하는 학생들에겐 교사가 세심하게 학생의 특성과 기질에 맞는 책을 권해야 한다.
책 읽은 후 사후활동은 여러 감각을 자극하기 때문에 흥미를 유발하는데 안성맞춤이다. 책갈피, 책광고, 책엽서, 소설이어쓰기, 노래개사로 책 이해하기 등이 형식적인 글로 무장된 독후감에서 탈피하고자 만들어졌다. 하지만 깊이 있는 책 읽기로는 한계를 보인다. 또 이러한 활동은 책 내용 집중보다 만들기 집중 현상을 불러온다.
저자를 대상으로 한 현장인터뷰는 아직 널리 퍼지지 않은 활동. 학생들이 읽은 책의 저자를 찾아가 만나는 독서인터뷰는 독서와 교육이 적절히 섞인 것이 장점이다. 조를 구성한 학생들은 역할 전체를 지휘하는 ‘기획’, 인터뷰 대상자와 연락하는 ‘외교’, 인터뷰 내용을 준비하는 ‘물음’, 만남을 사진 혹은 영상으로 기록할 ‘사진’, 전체 과정을 글로 정리하는 ‘최종보고서’ 등으로 나뉜다. 학생들은 자기 역할에 대해 각자 따로 보고서를 작성, 최종보고서를 맡은 학생은 친구들이 쓴 글을 모아 종합해서 완성본을 낸다. 이 활동은 학생들의 자기존중감과 공동체감을 높여준다.
교육여건 고려하지 못한 활동 ‘독서골든벨·독서기록장·윤독독서’
전교생 독서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독서골든벨과 독서경시대회를 개최한 학교들은 소수 학생들만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고민에 빠진다.
독서경시대회는 단편적인 문제 위주로 출제되면서 책읽기 풍부함이 줄었다. 게다가 다수의 학생들이 책을 읽는 효과가 있지만 소수의 학생은 예상 문제를 뽑아 답을 외워 본래 취지가 사라지고 만다. 많은 손길과 움직임을 요구하는 것도 학교에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학생들이 책을 읽고 감상을 적어 모은 독서기록장은 중고등학교에서는 한계를 보인다. 교과 중심 체제인 중등의 구조에서 성과가 미미하기 때문. 교과수업에 지친 교사가 살피지 않는 독서기록장은 부실한 내용으로 가득 차게 된다.
한 학급에 같은 책을 학생수만큼 갖추고 일정 기간 지나면 다른 학급과 바꿔 읽는 윤독독서도 중고등학교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다. 획일적으로 권유되는 책은 학생들에게 읽혀지지 않는다.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소수의 학생들만 읽는 것. 초등 5학년만 되도 각자의 개성과 기질이 형성되기 때문에 일방통행 하듯 권장도서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윤독독서나 학급문고를 활용하고자 한다면 10종류 이상의 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하나의 책을 읽은 4~5명의 학생은 독서토론 하기에도 알맞다.
한편 가장 많은 책을 읽은 학생에게 다독왕 수여하는 학교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다독(多讀)은 책의 수만 포함하지 않고 한권의 책을 여러 번 읽으며 미처 보지 못한 행간과 작품세계를 음미하는 것을 담고 있다. 다독만큼 정독(精讀)을 중요시 하는 분위기가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터넷소설 보는 학생에게 즐기되 빠지지 않도록 하위문화 설명해주기
팬픽을 기반으로 퍼진 인터넷소설에 학생들은 상당한 재미를 느끼는데 교사가 인터넷소설을 ‘3류 소설’ 이라고 딱지 붙이는 것은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과 같다. 학생들은 인터넷소설을 보는 것은 재미를 위해서지 유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신 즐기되 빠지지 말라고 조언하면서 하위문화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줘야 한다. 빡빡한 세상에서 지친 몸을 위로해주는 속성이 있다고 전해주면 학생들은 받아들인다.
독후감 과제에 있어서 장벽은 인터넷이다. 조금이라도 동적인 독후감을 끌어내고 싶다면 수업시간에 독후감을 작성하게 하는 것이 좋다.
오래 붙잡고 앉아서 쓰기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깊이 있는 글쓰기를 요구하고 싶다면 생활 글을 주문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소설이나 시를 읽게 하고 자신의 경험과 일치하거나 비슷한 작품을 엮어 글을 쓰는 것이다. 생활 글은 아이들의 경험과 생각, 생활이 묻어나오기 때문에 학생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한편 교사들이 주창하는 고전에 대한 학생들의 선입견은 생각보다 완고하다. 고전의 중요성에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막상 들이밀면 돌아서기 일쑤다. 같은 고전이라도 스토리 중심으로 엮었거나 제대로 번역된 책을 선정해 고전의 딱딱함을 풀어주는 것이 좋다.
책을 읽고자 하나 어디서부터 읽어야할지 고민하는 학생에게 추천도서나 권장도서를 내밀기보다 학생의 특성을 살려서 추천하길 권유한다. 보통 남학생은 무협판타지에 여학생은 감성소설 혹은 연애소설에 흥미를 느낀다. 청소년과 또래의 고민을 담은 도서는 매력을 크게 발산한다. 또 관념적인 소설보다 성장소설, 스토리 중심의 삶이 생생하게 묻은 소설은 학생들의 눈을 붙잡는다.
한번 하더라도 제대로 평가하기…교사에게 전하는 노하우
책을 얼마만큼, 어떻게,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하는 평가는 독서교육 마무리에 해당한다. 마무리인 만큼 중요도는 높은 법. 평가의 다양화도 고려돼야 하지만 한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평가의 진정성을 높일 수 있다.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줄 때 특정 글자체, 크기, 편집스타일 지정하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좀 더 세세하게 오랫동안 과제를 보고 싶다면 눈의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 특정 스타일을 주문하는 것이 좋다. 또 학생들의 맞춤법과 철자를 바로 잡아주겠다는 일념으로 독후감을 체크하다 보면 결국 학생의 생각과 느낌을 파악하는데서 지치고 만다. 결과에 주목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교사가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교사가 읽어보지 않은 책은 독서교육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자문: 남양주 광동고 송승훈 교사, 성북정보도서관 송경미 사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