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경기도에 위치한 양오중학교(교장 최영수)의 미술실. 수업종이 치기도 전에 1학년 1반 학생들이 깔깔대며 들어왔다. 앉고 싶은 친구들과 네다섯 명씩 모이더니 금세 한 그룹을 만들었다. 이명은 교사(미술)가 사진과 트레이싱지를 나눠주자 학생들은 종이를 책상 바닥에 깔고 자신의 얼굴이 프린트 된 사진을 올렸다. 펜으로 얼굴 윤곽선을 꾹꾹 누르니 흰 종이에 본이 나타났다.
1반에서 제일 그림을 잘 그린다는 효준(14)이는 진지하게 그림 그리는 법을 설명해줬다. “종이에 본이 새겨지면 점으로 선을 채우면 돼요. 그럼 내 얼굴 윤곽선이 나타나요. 점으로 색이랑 명암을 표현하면 인물이 선명해져요. 이런 식으로요” 그러자 트레이싱지에 효준이랑 흡사한 얼굴이 새겨졌다. 그걸 본 친구들은 난리다. “와 잘 그린다” “똑같다” “너 그림으로 나가” 정작 본인은 가만히 있는데 친구들이 아우성이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는 효준이는 “요즘 미술시간에 새로운 그림을 많이 그려서 재밌다”고 웃었다.
ⓒ '나의 자화상' 그리기를 완성한 1반 학생들의 그림.
여학생들끼리 앉은 책상에선 명랑한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빅뱅의 대성을 좋아한다는 서원(14)이는 “오늘은 그래도 양호한편이에요. 시끄럽긴 한데 그래도 뭔가 자유롭고 좋아요.” 사진 속 웃음이 예쁘다고 하자 “정말요? 대성이가 잘 웃는데 저도 잘 웃거든요. 미술실 와서도 웃으면서 그림 그릴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 완성된 그림을 선보이는 1반 학생의 작품.
수업시간이 후반부로 가자 몇몇 학생들의 그림이 완성됐다. 사인펜 세트를 챙겨온 내일(14)이는 친구들에게 펜 빌려주느라 정작 본인 작품은 미완성 됐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전에는 미술이 별로였는데 요즘엔 재밌어요” 수업이 끝나고도 내일이는 교실로 가지 않고 이 교사의 도움을 받아 끝까지 펜을 잡았다.
ⓒ 미술 시간이 즐겁다는 양오중 1학년 1반 학생들.
한바탕 소란이 있었던 미술실은 학생들이 나가자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그림으로 두른 미술실 흰 벽이 눈에 뛴다. 자세히 살펴보니 고구려 무용총 무용도가 댄스그룹 카라로,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수렵도는 기인으로, 신윤복의 미인도는 미녀쟁탈전의 주인공이 분했다.
이 교사가 미술사에서 다룬 이론수업을 바탕으로 학생들과 ‘말랑말랑 뇌운동’을 하면서 이색작품이 나왔다. 학생들은 수렵도와 무용도 그림이 복사된 종이에 나머지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운다. 수렵도 사슴들이 단체 줄넘기를 하기도 하고, 산이 뱀으로 변하는 시공간을 초월한 작품이다. 무용도 인물들은 힙합 춤을 추는 댄서가 되거나 탈춤을 추는 멋스런 캐릭터로 분한다.
기발한 작품은 표현을 함축하는 포스터에서 더 빛을 발한다. ‘금지’를 모티브로 만든 포스터엔 ‘커플 애정행각 금지’ ‘자살 금지’ ‘훔쳐보기 금지’ ‘예쁜척 금지’ ‘교내 풍기문란 금지’ ‘판치기 금지’ 등 제법 뼈있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학생들은 떠들고 웃고 왔다갔다 움직이면서도 미술을 한다. 미술실에서 단순히 떠드는 게 아니라 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더불어 그림을 그린다. 쾌활하고 속도감 있는 수업은 이 교사의 철저한 준비와 연구에서 나온다. 올해로 교직생활 3년차인 신참내기 이 교사는 늘 고민한다.
학생들이 가진 재능을 끌어내려면 참여와 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마침 참여소통교육모임을 통해 교사가 일어나야 교실이 산다는 실마리를 얻었다.
“소통 가능한 수업을 위해 선배 교사들의 노하우를 모아서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아이들 작품을 미술실에 붙였어요. 아이들은 자신의 그림이 붙으면 정말 좋아해요”
이 교사는 학생들의 자존감에 집중했다. 실기 위주인 미술교과 성격을 살려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학생들이 재미있어 하는 걸 찾았다. 좋아하고 재밌는 건 하는 학생들의 특성을 파악하니 수업에 접목할 교과연구에 속도가 붙었다. 수업시간 사소한 에피소드도 모아서 아양신문을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학생들은 자신의 이름과 한 마디를 기억해준 선생님 주변을 맴돌았다. 소통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고민하다 보면 끝이 없다던 이 교사는 “학생과 교사의 연대를 고민하던 찰라에 이렇게 좋은 날도 오네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교사는 수줍게 웃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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