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호고 2학년 문학수업 시간. 도서관 연계 수업을 하고 있다.
경기도 오산의 한 고등학교의 문학 수업시간. 교사가 김동리 소설 <감자>의 주인공, 복녀의 가치관 변화와 죽음이 사회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술하라고 주문하자 학생들은 당황하지 않고 차근차근 생각을 적어냈다.
이미 지난 사회교과 수업시간에 개인과 사회가 부딪혀 가치관의 갈등을 빚는 현상에 대해 접한 학생들은 복녀를 통해 당시 유교적 가치관이 붕괴된 사회상을 술술 풀어냈다. 학생들은 제법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도서실에서 진행된 문학수업에서 학생들의 태도는 수동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일목요연하게 글로 표현했다.
성호고등학교(교장 김승곤) 도서관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인근의 학교들이 방문하기도 이미 수차례. 이미 도서관 좋다고 정평이 나있는 성호고는 2층 복도 아치형 입구에서부터 남다른 인상을 준다. 실내 공간배치와 인테리어, 기본 시설 모두 담당자의 땀과 아이디어가 곳곳에 묻어있다. 브라우징코너, 영상·시청각코너, 전자정보코너, 토론학습코너, 문헌자료코너, 모둠학습코너, 검색대 등 짜임새 있는 공간 활용으로 효율을 높였다.
지난 2003년 경기도교육청과 오산시의 지원으로 도서관을 리모델링한 성호고는 특성화 도서관 운영학교 모범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학교는 도서관 수업에만 국한하지 않고 알짜배기 노하우를 모아 논술 연구학교에 도전했다. 지난 2007~2008년 도교육청 논술교과 연구학교로 지정된 것. 도서관 좋다고 소문난 학교인 만큼 학생들의 사고력을 높이고, 대입에서 비중이 큰 논술과 심층면접 대비 일환으로 통합교과 논술을 자체 제작했다.
성호고는 ‘교과서로 공부하는 기초논술’ 작업에 착수, 국어, 수학, 사회, 과학, 기술가정, 정보사회 등 교과서를 단원별로 분석한 뒤 논술 지도가 가능한 단원을 각각 추출해 논술 프로그램과 지도안을 제작했다.
성호고 박종한 부장교사는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국어교과를 중심으로 논술을 시행하는 한계에서 벗어나 여러 교과에서 공통된 사안을 뽑아내는데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통합교과 논술을 준비하면서 교무실은 매일 늦은 밤까지 불을 밝혔다. 전체 교사가 동원돼 인문사회군(1, 2, 3)과 자연과학군으로 나누어 세부 주제에 따라 교과에 맞는 담당교사를 팀으로 배치했다. 교사 7~8명이 한 팀을 이루어 총 8개 팀을 결성, 각 영역을 담당했다.
‘호주제 폐지에 따른 양성 평등’을 주제로 한 인문사회군 인간 팀은 국어과와 사회과 교사들이 뭉쳐 학생들의 사고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자료를 발굴했다. ‘새만금 간척사업과 철새’ 주제에는 체계적인 자료를 뒷받침하고, 논리적으로 접근 가능하도록 과학과와 수학과 교사들이 합심했다. 이렇게 대 주제를 10개로 나누어 각 교과담당 교사가 들어간 통합논술 개발 팀을 구성하고 주제에 따라 인문, 자연을 나누었다.
성호고 오명헌 교사는 “학생들이 논술을 하는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소재와 기초적인 내용을 시작으로 기초반과 심화반 등 수준을 나누어 지도한다”며 “학교에서 방과후 시간을 활용해 논술을 병행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통합교과로 수업시간과 연계해 논술을 진행하면 시간과 수고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는 수업시간에 교과 진도를 나가면서 더불어 논술을 병행하는데 학생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수행평가에 반영하며 시선이 흩어지는 것을 막았다. 덕분에 평소 통합교과로 익힌 학생들은 논술과 심층면접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성호고 이한울 학생(3)은 “수업시간에 틈틈이 준비하면서 인문, 사회, 과학 지식을 익힌 덕분에 자신있게 글을 쓸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수시면접에서 학교의 통합교과 논술 덕을 톡톡히 본 이주리 학생(3)은 “심층면접이 토론으로 진행됐는데 체외수정된 배아에 생명권이 있냐는 주제였다”며 “학교에서 법과사회시간에 다루었던 내용이라 자신있게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신혜 학생(3)은 “하나의 주제를 갖고도 교과가 다양한 학교 선생님들의 의견을 참고하면 시야를 폭 넓게 가질 수 있다”면서 “수시를 대비하는데 지난 3년간의 수업이 도움됐다”고 전했다.
성호고 임정근 교감은 “학생들의 학업을 도울 수 있는 교육시설이 전무한 지역 사정을 감안해 학교가 진학과 진로 지도를 위해 도서관 활용을 필두로 어문교육과 통합교과 논술에 비중을 뒀다”고 말했다.
한편 성호고는 모든 교실에 필독서 50권을 배치, 학생들이 도서관과 교실에서 책을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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