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대입제도는 먼 길을 돌고돌아 결국 제자리 공허하게 끝났다. 대입제도 개편은 교육부→대입 특위→공론화위→시민참여단 순서로 '하청에 재하청을 줬다'는 비판이 일 만큼 복잡한 절차를 거쳤다. 그러나 결국 수능위주 전형 확대와 상대평가 유지라는 빈약한 결론만 남은 셈이다. 정시모집이 다소 늘어날 뿐 현행 입시제도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이 사실상 없는 것이다. 어찌됐단 대입개편의 공은 이제 다시 교육부로 ‘귀환’했다.

수능위주 정시전형 확대

국가교육회의 산하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대입 개편 공론화위)는 지난 3일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결과 대입 시나리오 4가지 중 수능 상대평가를 유지하고 정시전형을 45% 이상으로 확대하는 ‘1안’이 시민참여단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나이(20~60대)와 성별, 지역이 각기 다른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참여단 490명이 대입 개편 공론화위가 결정한 대입개편 4가지 시나리오에 대해 찬성 정도를 각각 점수(1~5점)로 매기는 3차례 설문조사에 참여한 결과다.

대입개편 공론화위가 시민참여단의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 23.8%인 정시모집 비율을 45% 이상으로 확대하고 현행 수능 상대평가를 유지하는 ‘1안’이 3.40점(52.5%)으로 지지도가 가장 높았다.

그렇지만 국가교육회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 전형 비율을 늘릴 것을 권고했다. 수능 위주 전형을 얼마나 확대해야 하는지 비율은 제시하지 않았다.

국가교육회의는 산업대·전문대·원격대 등 설립 목적이 특수하거나 학생 수 감소로 충원난을 겪는 대학이 있는 현실까지 고려해 적용 제외 대상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함께 권고했다. 각 대학이 놓인 상황과 신입생 선발방법 비율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비율을 지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대입특위 위원장은 “우리가 가진 자료를 최대한 검토했는데 아무리 검토해도 예외가 나오기에 일정한 비율을 국가교육회의가 정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대신 더 많은 자료를 갖고 있는 교육부가 정리할 것이라고 김진경 위원장은 밝혔다.

올해 고3 학생들이 치를 2019학년도 입시에서 전국 4년제 대학의 수능 위주 전형 비율은 20.7%다. 국가교육회의가 비율을 명시하지 않을 경우 수능위주 전형을 대폭 확대하도록 교육부가 강제할 수단은 없다. 따라서 수능 위주 전형은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절대평가 도입 여부

공론화위원회 조사결과 정시확대 여부를 대학에 맡기고 현대 영어와 한국사에만 적용되는 절대평가를 수능 전과목으로 확대하자는 ‘2안’ 역시 3.27점(48.1%)으로 비교적 높은 지지를 받았다. 1안과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평가이다.

그렇지만 국가교육회의는 영어와 한국사 외에 제2외국어/한문을 절대평가로 바꾸되 국어, 수학, 탐구영역은 상대평가로 유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단 향후 수능 시험영역에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이 포함된다면 절대평가 방식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2022학년도부터 전 과목을 절대평가화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는 의견이 우세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수능 위주 전형을 확대한다면 당장 모든 과목을 절대평가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교육회의는 앞으로 학생부 위주 전형과 수능 위주 전형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안, 수능 절대평가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국가교육회의는 동시에 수능 절대평가 과목을 늘려가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준비도 아울러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입개편공론화위원회는 지난 3일 공론화 결과를 발표하면서 또 “중장기적으로도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가 적절하다는 의견이 26.7%로 나타나 시민참여단은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에서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로의 전환이 이르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공론화위는 그러나 “상당수의 시민참여단이 수능 절대평가 확대를 지지한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수능 절대평가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

문책론 거세질듯

국가교육회의의 이번 권고안은 공론화위원회가 제시한 4가지 방안 가운데 3안과 흡사하다. 공론화위원회가 시민참여단 4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론조사 결과와는 사뭇 다르다. 이 때문에 교수들이 많이 포진한 국가교육회의와 대입 특위가 사실상 대학 측이 지지하는 ‘3안’(현행유지)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국가교육회의의 이번 권고안으로 미뤄볼 때 결국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놨던 ‘교육 청사진’은 추진력을 상당히 상실하게 됐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수능 절대평가와 고교체제 개편,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 고교학점제 도입 등을 계속 추진해왔다. 수능 절대평가는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데는 5지선다형 문제로 학생들을 줄 세우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는 교육계 의견에 따른 것이었다.

교육부는 지난해 2021학년도 수능 개편을 추진하면서 절대평가 확대를 모색했지만, 당시 여론 반발에 밀려 개편을 유예했다.

학생부를 둘러싼 신뢰도 논란이 큰 상황에서 수능을 절대평가할 경우 변별력이 떨어져 수능 대신 학생부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는 학생·학부모 우려 때문이다. 교육부는 대신 올해 8월 새 입시제도를 제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수능전형 비중이 늘고 국어, 수학 등 주요과목의 평가방식도 상대평가로 유지된다.

대입제도 개편 과정에서 수시와 정시모집 통합이 백지화된 데 이어 수능시험 절대평가도 벽에 부딪힌 것이다.

절대평가는 국가교육회의가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결론을 제시함에 따라 당분간 추진하기 어렵게 됐다. 문재인정부에서는 사실상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예상보다 허약한 결론이 나오자 공론위 논의 자체가 헛수고였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교육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일 뿐 알맹이 없이 거액의 예산만 허비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진경 위원장은 “4개월에 걸쳐서 교육전문가들이 시민과 전면적으로 만나고, 논의하고, 갈등하고, 풀어낸 경험 자체가 굉장히 소중한 자산”이라며 “그 과정이 헛됐다고는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시간과 예산만 낭비했다는 비판과 책임자 문책론도 역시 거세다. 좋은교사운동은 “국가교육회의가 의결한 대학입시제도 개편 권고안은 지난해 대입 개편을 1년 유예한 수준에서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며 “1년의 시간을 보내고 20억이 넘은 예산을 들여 정시비율을 조금 확대하는 것을 권고하는 안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고교학점제, 혁신학교 확대 등 수많은 미래 교육정책들이 이번 결정으로 기능이 정지될 위기에 처했고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는 담보할 수 없는 국면으로 빠져들게 됐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공론화 과정의 잘못을 살펴 책임자들을 엄중하게 문책하고 결과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번 국가교육회의 권고안을 바탕으로 수능 과목구조와 EBS연계율 등 세부 사항을 함께 검토한 후 이달 말께 종합적인 대입제도 개편안을 마련해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