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의 위기다. 1994년 도입된 이래 2개의 문항에서 출제 오류가 나타난 일은 처음이다. 2014수능의 세계지리 문제 출제 오류로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의 속을 태웠던 수능. 또 다시 오류를 범하면서 신뢰도마저 흔들리고 있다. 지난 20년간 대입 평가방법의 주축이었던 수능. 개선의 필요성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지난 24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안양옥 회장을 만나 바람직한 대입제도와 더불어 교육 이슈 전반에 대해 물었다.

안양옥 회장은 수능이 지닌 가장 큰 오류는 “평가 자체가 모든 교육의 목적, 내용, 방법을 압도해버리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반복되는 출제 오류, 난이도 조절 실패, 변별력 상실, 폐쇄형 출제방식 등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수능 자체에 대한 혁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Back To The Basics, 교육근본으로의 회기”를 주장했다. “평가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자기 이론에 함몰되지 말고 통찰력 있게 평가의 본질에 근거하여 모든 것을 바라봐야 한다”는 안 회장은 “교육과정이 평가에 휘둘려 학교교육이 변질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수능체제와 함께 교원평가제를 우리 교육의 큰 문제로 꼽았다. “성과급, 교원평가, 교장공모 시스템 등이 다 있어야 하는 건 맞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최근 교원들의 ‘핫이슈’인 공무원연금 문제에 관해서는 ‘선공(先攻)’과 ‘협상’의 양면 전술을 구사해야 실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체육교수 출신답게 여학생 체육 활성화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진정한 양성평등을 위해 여학생의 신체적 정서적 특성에 맞는 체육 교육 여건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수능에서부터 현재 진행형인 교육계 이슈들과 관련된 안 회장과의 일문일답.

 

- 올 수능은 역대 최악이란 평가다.

“출제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 내·외적 타당도가 모두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수능의 지문은 통합적 사고를 중심으로 제시된다. 그런데 답은 5지선다형 객관식이다. 지문과 답안의 괴리가 있는 것이다. 통합적 지문을 제시하면 답안은 질적으로 진술하게 하는 게 맞다. 문항의 내적 합치도가 맞지 않다. 외적 타당도는 수능을 출제하는 주체들과 관련된 사안인데 기초개념을 모르는 교수들만 참여하고 교사는 공정성 한계로 배제된다. 매년 출제위원이 교체되고 있다. 이러한 내적, 외적 타당도가 결여된 상황에서 수능 오류는 필연적이라고 본다.”

  - 교총도 대입제도 개혁을 촉구했는데.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의 대입제도는 학생의 진정한 능력, 즉 현재능력과 미래잠재능력을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다. 크게 기초학력평가, 학생부, 면접 세 가지를 제대로 평가해 반영할 수 있는 개혁이 필요하다. 수능은 ‘문제은행식 국가기초학력평가’ 방식으로 전환하고 학생부에서는 질적평가와 과정평가, 창의적 사고와 문제해결평가가 교내에서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면접은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전공교수가 전공에 맞는 활동 등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 논술은 점진적으로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

  - 올 수능을 단순한 출제 실수로 넘기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다. 우리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것 아닌가.

“그렇다. 우리 교육은 ‘속 빈 강정’이 돼가고 있다. 기초기본개념을 교육하는 일을 홀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암기를 굉장히 나쁜 교육이라고 치부하며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잘못됐다. 기초기본개념능력을 키우려면 훈련과 반복을 통해 습관화하는 게 필요한데 이는 암기를 통해 기를 수 있다. 암기로 기초기본개념의 내실을 다져야 창의력도 신장되는 법. 암기 없이 창의력만 강조하는 교육에서 탈피해야 한다.”

  - 교육부가 장학·편수 기능을 약화시킨것은 기본을 무시한 처사다.

“한마디로 현재 교육의 ‘비정상적 관행’ 중 하나라고 본다. 장학·편수기능은 MB정부 때 없앴다. 예전엔 ‘혼’이 깃든 우수한 장학진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승진을 위한 장학진으로 퇴색된 면이 없지 않다. 교육은 탁상공론이 아니라 ‘현장’이 중요하다. 보다 적극적인 현장지원 체제를 위해 교육부의 장학·편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 서울시교육청도 조직개편을 하면서 교육과정과를 폐지해 버렸는데.

“이 또한 큰 문제다. 교육과정 정책과를 없앤 것은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체계적인 교육과정 없이 체험활동만 할 것인가? 체험활동은 교육과정에서 배운 기본개념을 보다 생생하게 경험하기 위해 하는 거다. 기본개념이 없으니 놀다 오기만 하는 체험활동이 되는 것 아니겠나. 기본개념을 배우려면 교육과정이 제대로 돼야 한다. 교육부가 제기기능을 못하면 우리라도 나서야 한다. 교총이 민간 교육부가 돼 교육정책을 주도해 나가겠다.”

  - 오늘 말레이시아 교육부 일행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교원평가가 화제가 됐다고 들었다. 무슨 말이 오갔나.

“우리가 겪고 있는 시행착오, 문제점들을 공유했다. 현재 말레이시아는 교원평가시스템을 개발해 2016년 전 학교에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좋은 이야기만 전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나. 사실 우리의 교원평가제는 미국 신자유주의 논리에 근거해 도입됐다. 교사를 부모처럼 신뢰하는 한국의 전통적 사회 시스템을 무시한 채였다. 교원평가를 성과급과 연계한 것도 문제다. 교육을 경제 논리에 대입하다보니 교사의 자존감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성과급이라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교원평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원평가가 도구·수단화되고 있다는 건 큰 문제. 이런 점들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그쪽에서도 적극적으로 경청하더라.”

  - 교원평가가 교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교육현장을 왜곡시키는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다. 대안은 없나?

“교원평가는 신뢰를 바탕으로 교사 자존감을 올리는 방식이어야 한다. ‘자기 평가(self evaluation)’, 즉 스스로 자기 수업을 연구하고 능력을 키워 평가해서 발전시켜나가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 집단평가가 필요하다. 이는 학생, 학부모가 할 것이 아니라 교과교사를 하나의 공동체집단으로 묶어 교장이 평가하는 것.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학생성적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는 거다. 교사들이 자기연구를 잘 하고 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교사가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 교총이 ‘참스승’을 들고 나왔는데 추구하는 게 뭔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스승상’이 있다. 그게 바로 ‘참스승’이다. 올바른 인성과 창의적 지성을 함께 갖춘 전인적 인격체로 제자의 성장을 도모하는 스승, 연구와 연찬을 통해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스승, 따뜻한 마음을 지닌 깨끗한 스승이 ‘참스승’이다. 교권은 교사가 되는 순간 저절로 부여받는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교직사회 스스로 전문성을 기르고 열정과 헌신을 보여야 한다. ‘참스승’이 될 수 있는 방법이다.”

  - 교육본질을 놓고 전교조와 정면대결 하겠다는 뜻인가.

“우리가 전문직 단체로서 각성하고 노력하면 전교조 조합원 중 2만명은 데려올 수 있다. 참교육 하겠다고 전교조가 나섰지만 많은 교원들이 실망하고 있지 않은가. 교총이 정말 전문직 단체라면 참스승, 참학생, 참 학부모 운동을 전개하면서 적극적으로 치고나가야 한다. 지금이 기회다. 전교조를 교총화 하는데 승부를 걸어야 한다. ‘참’이라는 용어 사용 때문에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용어에 집착해선 안 된다. 교육철학이 중요한것 아닌가.”

  - 기회 있을 때 마다 여학생체육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던데.

“교육현장에서 진정한 양성평등이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 학교체육은 남성위주 였다. 이제 건강한 여학생을 위한 체육활성화에 눈을 돌려야 한다. 한국사회는 처음으로 여성대통령을 맞이했다. 그러나 여성 지도자 양성을 위한 노력에는 소홀한 게 사실이다. 교육 분야에서 노력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여학생체육 활성화다. 일본 홋카이도에서는 여학생들에게 배구를 전문적으로 가르친다. 배구는 정적운동이면서도 하체운동을 할 수 있는 종목이다. 교사들 부터 여학생체육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 공무원 연금투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향후 투쟁 계획은.

“공투본(공적연금강화를위한공동투쟁본부)은 이름 그대로 ‘투쟁’하기 위한 본부다. 빨리 대안을 갖고 선공(先攻)으로 나가야 한다. 물론 공투본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제안한 대로 합의기구가 설치된다면 공무원연금 개혁에 동참할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투쟁이었지만 협상국면으로 가는 게 옳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 새누리당의 밀어붙이기식 속도전에 휩쓸리지 않도록 중지를 모아 공무원연금 문제의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