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훈 기자] 진보진영 교육감들중 가장 성공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이다. 범위를 넓혀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를 모아도 김 전 교육감을 따를 자가 없을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이야기다. 교과부( 교육부 전신)와 진보 진영간 갈등이 생길때면 관료들이 역할을 나눠 진보교육감들을 1대1로 상대 했다. 설득도 하고 압력도 넣는 일종의 대인마크를 한 셈이다. 무상급식, 학생 인권조례, 학업성취도 평가, 학교폭력 대책등이 단골 메뉴였다.

당시 교과부가 가장 어려워했던 인물은 김상곤 전 교육감이었다. 그는 교과부 말을 충분히 들어주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묘한 매력의 소유자 였다. 교과부 직원 이라면 문전박대 부터 하고 보는 교육감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실제로 김 전 교육감을 만나고온 교과부 직원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왔는데 곰곰이 계산을 따져보면 손해나는 장사를 했다는 것이다. 설득하러 갔다가 설득당하고 온 경우가 비일비재 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관료들은 물론 이주호 교과부장관 조차 그런 김 전 교육감을 신뢰했다는 점이다.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교육감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교과부가 잘하는 정책은 가감 없이 수용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노선은 진보지만 교육을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실용주의 정책은 각종 인사에서 특히 빛을 발했다.  이는 그가 경기 도민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는 핵심 동력이 됐다.

교과부 국장을 지낸 한 장학관은 어느 쪽에도 쉽게 휘둘리지 않는 카리스마에 높은 점수를 줬다. 교육감 회의에 가보면 김 전 교육감은 거의 말이 없었다고 한다. 진보 교육감들이 핏대를 올리며 교과부를 성토 할 때도 그는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다. 공방을 주고받던 회의가 소득 없이 끝날 무렵 김 전 교육감이 이들을 불러 모아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나면 교육감 회의는 끝이 난다고 했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진보진영은 13명의 교육감을 배출했다. 이들중 8명은 전교조 교사 출신이다. 서울에서는 진보진영의 대표적 학자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가 39%의 지지로 당선됐다.

조 당선인에 대한 교육계의 반응은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보수성향이 강한 교육계 정서를 감안하면 우려 쪽에 더 쏠린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기대 섞인 우려’가 많다는 사실이다. 합리적이고 진정성 있는 이미지가 여느 진보 교육감들과는 다를 것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당장 교육 현장이 극심한 갈등과 혼돈에 빠질 것으로 점치는 분위기는 아니다. 교육계 인사들은 참신하고 점진적인 변화를 고대하고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집단이나 세력의 이익을 위한 ‘그들만의 투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다. 그러면서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공교육의 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두고 거대한 교육 조직과 융화를 이룬 김상곤 리더십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한 초등학교 교장은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쫓기다 보면 급진적 정책을 내놓게 되고 그럴수록 학교 현장과는 멀어지게 된다”면서 “당장 뿌리 뽑아버리면 시원할 것 같지만 그런 욕망을 억제하고 이면을 꼼꼼히 따져보는 인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곽노현 교육감 시절 장학관을 지냈던 한 중학교 교장은“교육정책에 이념을 덧칠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며 “'교육의 본질'에 최우선을 두고, 멀리 그리고 넓게 보는 제2의 김상곤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