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서울 A여고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카카오톡에 대화방을 마련해 놓고 학생 한 명을 같은 반 학생 여럿이서 집단 괴롭힘을 가한 것이다. 한 달 여 동안 수백 통의 언어폭력에 시달렸다.

견디다 못한 학생이 담임교사에게 도움을 호소했고 학교 측이 진상 파악에 나섰다.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학생 보호 방안이 논의됐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학교 측이 내린 결론은 학생들 간 사소한 다툼이 있었을 뿐 집단 괴롭힘은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피해 학생이 험담을 하고 다니는 바람에 화가 난 학생들이 대화방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이 전부라고 했다.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한 학생이 되레 가해자로 둔갑해 버린 순간이다.

이런 일은 또 있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한 고교생이 학교측에 이 사실을 알렸다가 동료 학생들로부터 집중 비난을 받은 끝에 지난달 자살시도를 한 일이 발생했다. 서울 B고교에 다니는 C군은 자신을 괴롭히던 학생을 학교에서 비호하고 심지어 학생회장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커다란 좌절감을 느꼈다고 했다.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이후 학교폭력은 우리사회 최대 화두가 됐다. 지난 2월 총리까지 나서 종합대책을 내놨고 최근에는 가해학생 학생부 기재 문제를 놓고 교과부와 일부 진보교육감 간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학생부 논란은 인권이냐 폭력 예방이냐를 둘러싼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문제는 교과부와 교육청이 공방을 벌이는 동안 학교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고 잔인했던 폭력이 없던 일로 둔갑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선 교사들에 따르면 가행학생 중 상당수는 시쳇말로 공부 잘하고 힘센 아이들인 반면 왕따나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오히려 사회 경제적 돌봄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때문에 학생부 기재가 진학에 직접 영향을 미치면서 웬만한 사건은 없던 일로 처리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한 번 실수한 것을 가지고 장래를 망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교육적(?)’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학교의 이 같은 행위는 폭력을 비호하고 피해학생의 인권을 2차, 3차 유린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진보진영 교육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학교폭력 사실을 중간에 삭제하는 방안도 이들에게는 웃음거리에 불과할 뿐이다. 학폭위 결과도 뒤집을 정도의 ‘능력’ 이라면 중간삭제라는 절차는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교사들의 지적이다.

학창시절 동안 친구들을 괴롭히던 학생과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이 학생부에서 동등한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있는 그대로 사실이 기록되고 진학이건 취업이건 어떤 형태로든 상응한 대가가 주어져야 한다. 학생부는 이름 그대로 성적과 출결, 그리고 학교생활이 진실 되게 기술돼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 학교 폭력에 고통 받는 많은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학교가 권위를 찾고, 교사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엄정하고 진실된 학교폭력 처리를 기대해 본다.